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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성택 작성일 2016-07-01
조회수 497
백비의 청백리 박수량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에 조선의 청백리 아곡 박수량(朴守良, 1491-1554)의 묘소가 있다. 묘 앞에는 이름도, 내용도 없이 글자 한 자도 새기지 않은 백비(白碑가 있다.
"그의 청백함을 알면서 비에다 새삼스럽게 그 실상을 새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백에 누가 될지도 모른다."
조선 13대 임금 명종은 청렴결백한 박수량의 삶을 기리기 위해 이렇게 말하고 백비를 하사한다.

 명종실록에는 박수량이 죽었을 때 가족이 상여를 메고 갈 돈이 없어 고향에도 가지 못하자, 대사헌 윤춘년이 명종에게 청하여 정부지원금으로 장례를 겨우 치렀다고 실려 있다. 이렇게 청렴한 박수량이 었지만 한 때 의심을 받았다. 야사에는 박수량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국유재산을 사유재물로 삼는다고 모략하자, 명종은 비밀리에 암행어사에게 진상조사를 시킨다. 어명을 받은 암행어사는 과객으로 가장하여 박수량의 장성 본가를 살폈다. 박수량의 집은 청빈 일색이었다. 암행어사는 이를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그러나 명종은 다시 다른 어사에게 재조사를 시켰다. 두 번째 암행어사 역시 박수량의 청빈함을 보고하였다. 그제서야 명종은 박수량을 신임하고 중책을 맡겼다고 한다.

박수량은 권력실세에 대한 부패척결에 앞장 선 검찰관이었다. 그는 1530년 사간원 사간 시절 인사청탁에 연루된 좌찬성 이향을 파직시켰다. 이후 이항은 함경도로 유배를 가서 사약을 받았다. 1552년 전라도 관찰사 시절 영의정 이기의 오른팔인 광주목사 임구령을 파직시키기도 하였다. 명종은 영의정 이기가 사헌부, 사간원으로부터 탄핵을 받자, 이기가 거느린 양인이 전국에 몇 명이나 되는지를 팔도의 관찰사에게 조사하라고 지시하였다. 어명에도 불구하고 7도의 관찰사는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비호를 받은 최고 권력자 이기의 보복이 두려워 감히 조사를 못하고 있었는데, 유독 전라도 관찰사 북수량만은 조사를방해한 광주목사 임구령을 파직시키라고 임금에게 보고하여 임구령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을 실록에 적은 사관(史官)은 그를 명신(名臣)이라고 극찬하였다.
 
박수량은 애민하는 목민관이었다. 그가 전라도관찰사로 근무한 지 두 달 되었을 가을에, 날씨가 너무 불순하여 백성들이 병에 걸리고 임산부들이 죽을 위험에 있음을 직시하고 조정에 약제 지원을 요청하였다. 한편 일생동안 분수를 지킨 북수량은 후손에게 이렇게 유언하였다.
"나는 초야에서 태어나 임금의 후한 은총으로 판서 벼슬에 까지 올랐으니 그 영화는 과분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죽은 후 행동을 삼가하여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

박수량은 별세한지 250년 후인 1805년에서야 시호를 받았다. 시호는 貞惠公인데, 정혜는 淸白守節의 貞과 愛民好與의 惠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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